또 한없이 느리게 햇살이 복도에 머문다
시간은 사라진 지 오래고 
복도의 어디에 복도의 그림자는 없다 


기다랗고 물기 없는 바게트를 손에 쥐고 
느리게 빵을 뜯으며 
게처럼 복도를 걷는다

햇살이 펼쳐놓은 복도 속으로 
빵과 함께 들어가서 
복도를 품으면
사라진 시간이 돌아올까?

해 질 무렵부터
집은 저 복도의 끝 어딘가에서 혼자 부풀겠지
병원은 저 복도 끝 어딘가에서 혼자 부풀겠지
복도도 그렇게 또 햇살을 건너가겠지

햇살이 주무르던 모든 것들 멈추고 
세상은 밤새 발효가 시작되고 

사랑해서 
하루라도 못 보면 안 될 것 같이
마치 그렇게 하다보면 정말 만날 수 있는 것처럼
느리게 정말 느리게 
사랑이란 말 정말 느리게
안녕히 가라는 말 정말 느리게

시간이 사라진 복도에서
게걸음으로 느리게
더 느리게 헤어지는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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