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 시
사람들은 집에 없었다
아무도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오래도록 전화가 저 혼자 울고
비디오에 장착된 디지털 시계만이
깜빡거리며 집안을 걸어다녔다
비디오 또한 예약된 시간이 되면
저 혼자 깨어나 움직일 것이다
살 것이다
텔레비전을 켠다 어제도 보고
몇 년 전에도 보았던 사람들이
(살아서)돌아다닌다 소리를
죽이자 그들 또한 죽어버린다
(헛것이 된다)
몇 년을 보아온 저들의 대화 속에는
(일상 속에는) 나는 없다
나는 저들의 나이와 경력과 특이한
버릇이나 취미까지도 알고 있는데
저들은 나를 모른다
나는 리모컨을 바닥에 버린다
텔레비전 속에 아무도 살지 않듯
집에도 아무도 살지 않는다
모두들 말하고 먹고 잠자고
돌아다니면서도 살지 않는다
잠시 들르는 가게나 술집처럼
육체나 생에 또한 그렇게
머물렀다 떠날 것이다
오후 네 시
이제부터 나는 집을
집이라 부르지 않으려 한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아
치울 수 있는 신발이라 부르리
(혹은 텔레비전이거나 가족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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