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도 준비가 필요하다. 
슬픔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사람에게 건네는 위로는 방향이 
‘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로 향해 있다. 
그건 위로가 아니라 슬픔을 목격하는 자신의 고통을 덜기 위한 도피에 가깝다. 
지금이 위로를 해야 하는 시간인지 그냥 지켜봐야 하는 시간인지 알 수 없다는 거, 
어쩌면 그게 ‘위로’라는 행위 자체의 ‘불구성’인지도 모른다. 
너의 곤경과 너의 슬픔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건 
그래서 많은 경우 방치가 아니라 준비의 시간이 된다.  

“더 슬퍼해. 네가 다 슬퍼할 때까지 기다릴게.”


* 박진성 산문집 < 이후의 삶 >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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