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여보, 초혜!

가을밤이 깊어가고 있소. 당신이 떠난 그 순간부터 가을은 문득 깊어져 내 시간을 쓸쓸한 적막

으로 채우고 있오. 당신과의 23년 세월, 세월이 쌓일수록 당신을 아내로 얻었음을 하늘에 감사

하게 되오. 당신도 나를 남편으로 얻었음이 나와 같기를 바라는데, 그렇지 않을 까봐 두렵소. 

오늘 아침 나절에 놀라움이 깃든 음성으로 머리칼을 헤쳐 보였을 때 나는 우리의 삶 23년을 순

간적으로 떠올렸고, 부끄러운 듯 숨어있는 흰 머리카락들마저 대견하고 사랑스러웠소. 그래서, 

물을 들이지 말라고 했었던 것인데 당신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우리는 열심히 살아왔고, 지

금에 이르러 있소.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는 거요. 하늘은 언제나 우리를 축복하고 보살필 것 

이오. 혼자 자는 잠자리가 춥겠소. 


1985.9.22. 밤 

죽는 날까지 당신을 사랑할 당신이 남편 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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