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그 나무에 둥지를 틀지 않으면서부터
나무는 숲속처럼 적막해지기 시작했다
텅 빈 고요가 오후의 햇살처럼 마른 가지에
걸리기도 하고 바람은 모래알처럼 습기 한 점
머금고 있지 않았다 실팍한 뿌리가
바위에 걸려 찢어질 때마다 나무는 가지를
흔들며 비명을 질렀지만 메아리조차
지워진 골짜기에는 말라버린 물줄기만
흔적을 드러낼 뿐이었다
날이 갈수록 갈라진 껍질에 각질 같은
생채기가 생겼고 잎이 떨어진 자리마다
흉물스럽게 수액이 흘러냈다


그리운 나무
나는 장롱에 윤을 내다 말고 문득 나무 결에
드문드문 박힌 생채기가 가여워져
오랜 전 둥지를 틀었을 새들이 그랬던 것처럼
장록 속에 가만가만 몸을 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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