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는 게 두려운 나날이었습니다
그해 여름이 다 가도록 나는 울음이 헤픈 한 마리 매
미였다 신록 속으로 뚜벅두벅 구름이 걸어 들어오고 시
간은 모기향처럼 뚝뚝 끊어져 내렸다 정지된 풍경의 한
장면인 채로 달력마다 해바라기가 황금빛을 뿜을 때까
지 나의 몸은 사과알이 모두 빠진 후 왕겨들로만 가득찬
상자같이 까칠했다 햇덧 동안 투명한 집에서는 오래도
록 전화가 울고 그때마다 가벼워진 몸에서는 새청 같은
정전기가 소스라치게 일었지만


 이제 나는 하루살이 떼 같은 눈발이 날리는 저녁이면
김장독에 묻어둔 김칫돌을 들추어 한 포기 맛깔스런 배
추를 담아내다 수저 위에 툭툭 걸친 더운 저녁을 지어
먹고 푸근한 아랫목에 무릎을 펴고 앉아 알토란 같았던
나날의 생에 위로 다보록하게 피어날 거먕빛 꽃망울들
을 쓰다듬게 되리라 이윽고 막장에서 건져 올린 금모래
에서 익숙한 함지질로 물목을 잡아내는 저 신비로운 난
장꾼처럼

* 여림 < 폐경기, 그 이후 >

'여림시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 물잔디 >  (0) 2022.01.04
* < 1999년 2월 3일 아침 04시 40분 >  (0) 2021.12.28
* < 나는 공원으로 간다 >  (0) 2021.12.28
* < 어린 시절의 밥상 풍경 >  (0) 2021.12.23
* < 난지도 근처 >  (0) 2021.12.2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