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집 앞 과일 트럭이 떨이 사과를 한 소쿠리 퍼주었다
어둑해진 골목을 더듬거리며 빠져나가는 트럭의 꽁무니를 오래 바라보았다
낡은 코트를 양팔로 안아드는 세탁소를
부은 발등을 들여다보며 아파요? 근심하는 엑스레이를
나는 사랑했다 절뚝이며 걷다 무심코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
너는 참 처연한 눈매를 가졌구나 생각했다 어제는

지친 얼굴로 돌아와 말없이 이불을 끌어다 덮는 감기마저
사랑하게 되었음을

내일이 온다면
영혼이 떠난 육신처럼 가벼워진 이불을
상할 대로 상해 맛을 체념한 반찬을 어루만지기로 한다

실연에 취한 친구는 자주 울곤 했는데
사랑은 아픈 거라고 때때로
그 아픔의 눈물이 삶의 마른 화분을 적시기도 한다고 가르쳐주었는데
어째서 나는 이토록 아프지 않은 건지

견딜 만하다, 덤덤히 말한다는 것

견딜 만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텅 빈 곳으로의 귀가를 재촉한다는 것
이 또한 사랑이 아닐까 궁지에 몰린 사랑.
그게 아니라면

도리가 없다는 것 더이상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우연히 날아온 무엇에라도 맞아 철철 피 흘리지 않을 도리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천양희 < 오래된 골목 >  (0) 2022.11.20
* 박소란 < 참 따뜻한 주머니 >  (0) 2022.11.20
* 이영광 < 높새바람같이는 >  (0) 2022.11.19
* 허은실 < 힐스테이트 >  (0) 2022.11.12
* 허은실 < 하지 >  (0) 2022.11.1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