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이 말이 떨려올 때 생애 전체가 
한 울림 속으로 이은 줄 잊은 때가 있나 
만곡진 연안들이 마음의 구봉을 세워 
그 능선에 엎어놓은 집들과 부두의 가건물 사이 
바다가 밀물어와 눈부시던 물의 아름다움이여, 나 잠시 
그 쪽빛에 짐 부려놓고서 어떤 충만보다도 
돌산 건너의 여백으로 가슴 미어지게 
출렁거렸다, 밥상에 얹힌 
꼬막 하나가 품고 있던 鳴梁은 
어느 바다에 가까운 물목인지 

밤새도록 해류는 그리고 빠져 나갔을까, 세찬 
젊음만으로도 몸이 꽁꽁 굳어지던 
그런 시절에는 써늘한 질문에 갇히고, 우리가 
누구인 줄 자꾸만 캐물어 마침내 땅 끝 
에 가닿는 절망조차 함께 나누었던 
그 여정으로 나도 한때 아름다운 진주를 품었다 
칠색 자개 얹어 동여매던 저녁 나절의 무지개여,麗水가
旅愁여도 좋았던 

상처의 시절은 단단히 기억하지, 밀려온 진눈깨비조차 
참 따뜻한 나라라고, 적시자 녹아 흐르는 눈이 
녹슨 철선이 발하는 고동으로 어느새 푸석푸석한 
노을에 칠갑되기도 했느니 
마음이 헐어가고 시절이 더욱 쓸쓸해지면 누군들 
그걸 잊을까, 휠체어에 실려 C병동 쪽으로 
옮겨지던 맥막은 희미하게 
되살아나 그곳이 마지막 희망임을 
어렴풋이 알았을 그때에도 아득한 낭하 같던 시간들 

여수, 거기 누가 있어 골목 끝 빈집을 두드리랴 
두드려 여직 우리의 이름을 나눠 부르랴 
그때에도 우리는 기억하지 
담 너머로 번져오르는 동백꽃, 그 붉음에 취해 
단 한번 내다 건 紅燈 가까이 얼굴을 비춰 
눈 가장이에 덧낀 주름으로 세월을 헤아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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