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뒷산에는 고릴라가 산다.
 낮이면 꼼짝도 하지 않고 웅크리고 앉았다가 
 밤만 되면 한 잎 두 잎 나뭇잎을 따먹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릴라는 제 몸을
 움직인다.
 유성이 소리없이 지듯
 풀벌레가 움직이듯
 고릴라는 가만가만
 몸을 뒤천인다.
 사람들이 봄소풍을 올 때부터
 단풍구경에 판에 박힌 음악을 황홀한 감탄사를 찍을
때까지
 고릴라의 몸은 나뭇잎과 함께 서서히 야위어가고
 이윽고 겨울이 오면 고릴라는
 나뭇가지들 속에 제 몸을 웅크린다.
 도토리 나무 사이 솔 숲 사이
 웅크리고 앉아 먼 데  있는 고향을 본다.
 사람들은 고릴라 발치에 있는 약수를
 떠다 먹으면서도 한번도 그 물이
 고릴라의 수액인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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