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그만 죽고 싶다. 나날이
황폐해지는 척박한 대기
속에서 조금식 살을 파고드는
산성비에도 내 몸은 추레하게
병들고 있다. 처음의 여린
순이었다가 제법 많은 새들을
키워내기도 하던 젊은 날,
몇 가마니 튼실한 은행알을 일궈 내기도
하면서 부신 그늘을 바람으로
일렁이게도 했었다.
저리 많은 잎사귀들이 저마다
빛살 사이로 유영하는 날에는
토실한 아이들이
내 어깨며 잔등이며 기어 올라와
온통 푸른 웃음투성이가 되기도 했다.
천년은 너무 길다.
내 마른 껍질에 균열이 일고
사람들이 그 새로 덕지덕지
시멘트를 채워 넣고, 늘어진
팔 뚝에 쇠기둥을 박아 의수를 채을 적에도
이렇게까지 살아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땅속으로
흐르는 지맥을 짚어보면
샘은 썩은 하수 냄새를 풍기며
내 발끝을 조금씩 병들게 하고
바람은 더는 향기롭지가 않다.
이제 그만 나를 버려 달라,
시멘트와 쇠기둥을 내 몸에서
떼어달라 그리하여 고요한
고유의 죽음을 맞게 해달라.
나는 자연으로 풍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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