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업을 생각하며 자유인이 되었다고 문을 잠
근 지 사흘째
오늘 조카의 학예회가 있다고
제일로 바쁜 누이를 대신하여 도시락을 싸들고
나는 학교로 간다.
조약돌 한줌으로 반짝이는 아이들
어두운 무대에 불이 밝아오면서 한 무리 거위들이 백
조마냥 춤을 추고
일학년 육반 곱슬머리 사이로 새치가 번득이는 여선
생의 지휘봉 아래
갖가지 악기를 챙긴 아이들은 반원을 그리며 앉아 서고
맨 구석 멜로디언을 입에 문 조카를 향해
나는 총채처럼 손을 흔들었지만
터지는 플래시 불빛에 조카의 불안한 눈은 끝내 웃음
을 담지 않았다.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정오가 끝날 무렵 가위 눌린 꿈에서 늘 깨던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털고 부끄럽게 객석을 빠져 나오고
한두 줄 담배연기로 못다 부른 노래의 후렴을 그리지만
쌀과자 한 봉지를 상으로 받은 조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하학길 풀쩍풀쩍 웃음을 띄우는
조카의 가녀린 손목을 잡고 나는 눈물샘은 손바닥에
도 있음을
조심스럽게 깨달았다.
꼭 쥔 조카의 실팍한 체온이 덥혀주는 눈물을 그래도
부끄러워
손을 놓으며 아까 본 여선생이 딱딱한 지휘봉으로
다시 한번 내 어깨를 다그쳐 올 때
아아 잃어버린 나의 업이여
건너편 청소부 아저씨가 끄는 짐마차
자신의 몸보다 몇 곱절 더 무거운
그 마차의 무게로 나의 업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마다 조금씩
누적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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