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는
 무너지는 마음 안에 있었다

 무너지는 것이 습관이 된 줄도 모르고
 무너지고 무너지면서
 더 크게 무너지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주저앉을 마음이 있다는 건
 쌓아올린 마음도 있다는 것
 새가 울면
 또다른 새가 울었다

 또렷하게 볼 수 있다면
 상한 마음도 다시 꺼내볼 수 있을까
 도마 위에 방치된 생선이나
 상온에 오래 놔둔 두부처럼
 상한 것은 따뜻하고
 상한 것은 부드럽게 부서진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은
 감당할 수 없는 일로 남아
 마음을 놓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빛이 물속으로 들어간다
 물을 찢으며 들어간다
 어린 나는 그것을 보고 있다

 손바닥이 열려
 흐른다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아침이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적 없었다
 두꺼운 이불을 덮고
 맞물리며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했다

 덜 자란 나무는 따뜻할 수 있다
 한번 상하고 나면 다음은 쉬웠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복효근 < 입춘 무렵 >  (0) 2022.10.27
* 안미옥 < 질의 응답 >  (0) 2022.10.23
* 김사리 < 조화로 사는 방식 >  (0) 2022.10.22
* 최승자 < 마흔 >  (0) 2022.10.22
* 정선희 < 파란만장 하니? >  (0) 2022.10.2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