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하얗고 뜨거운 몸을 두 손으로 감싸고 
사랑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듯 
사랑은 이렇게 달콤하다는 듯 
붉은 립스틱을 찍던 사람이 있었겠지 

채웠던 단물이 빠져나간 다음엔 
이내 버려졌을, 
버려져 쓰레기가 된 종이컵 하나 
담장 아래 땅에 반쯤은 묻혀 있다 

한때는 저도 나무였던지라 
낡은 제 몸 가득 흙을 담고 
한 포기 풀을 안고 있다 
버려질 때 구겨진 상처가 먼저 헐거워져 
그 틈으로 실뿌리들을 내밀어 젖 먹이고 있겠다 

풀이 시를 때까지 종이컵의 이름으로 남아 있을지 
빳빳했던 성깔로 물기에 젖은 채 
간신히 제 형상을 보듬고 있어도 
풀에 맺힌 코딱지만 한 꽃 몇 송이 받쳐 들고 
소멸이 기꺼운 듯 표정이 부드럽다 

어쩌면 저를 버린 사람에 대한 
뜨거웠던 입맞춤의 기억이 
스스로를 거듭 고쳐 재활용하는지도 모를 일이지 
일회용이라 부르는 
아주 기나긴 생이 때론 저렇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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