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그늘을 사랑했네

버스를 놓치고 
가버린 저녁을 기다리고 
눌린 돼지머리 같은 달을 씹으며 
어둠을 토해내던, 

그 그늘을 사랑했네 

오지도 않을 그림자를 밟고 
두려움 많은 눈으로 밤을 더듬으며 
숨어 연애하던, 

그 그늘을 사랑했네 

저 혼자 배불러오는 봄을 향해 
입덧을 하고, 쏟아지는 소낙비에 젖어 
내 안에 그늘이 없다는 걸 알아버린, 

그늘을 사랑했네

언젠가는 같이 늙어갈 거라고 
슬그머니 내 허벅지를 베고 눕던, 그 그늘을 
사랑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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