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급습을 받은 동지 하나가 
상황이 위급하다며 지고 가던 
상자 두 개를 버리고 
사탕수수밭 속으로 도망가버렸다
하나는 탄약상자였고 
또 하나는 구급상자였다
 
그런데 , 
총탄에 중상을 입은 지금의 나는 
그 두개의 상자 가운데 
하나밖에 옮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과연, 
의사로서의 의무와 
혁명가로서의 의무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
나는 
내 생에 처음으로 깊은 갈등에 빠졌다
 
너는 진정 누구인가 ?
의사인가 ?
아니면, 
혁명가인가 ?
지금 내 발 앞에 있는 
두 개의 상자가 그것을 묻고 있다
 
나는 
결국 구급상자 대신 
탄약상자를 등에 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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