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추운 날 콩국을 끓인다.
연애의 마지막처럼 비릿하고 은밀한 빛깔,
적당한 온도란 얼마나 하염없는 기다림인가.
어디로 가야 우연이 운명을 만나게 되는지
알 수 없다. 오래 끓을수록 자주 놓치는
절망을 끌어안을 때 사랑의 부피는 정해진다.
채로 썬 무와 콩을 갈아 넣는 것이 전부.
단순해지기 위해 나는 너에게 몸을 허락했고,
점점 비릿한 것들이 섞이고 섞여
단단했던 기억들이 지워졌다.
콩국은 누구나 끓일 수 있지만 아무나
끓일 수 없는 것.
순식간에 흘러넘치고, 흘러넘치는 것만으로도
바닥은 순식간에 얼룩을 기억한다.
뚜껑을 열어도 끓어 넘쳐, 그것은 가끔
아직 오지 않은 이별을 예감하기도 한다.
겨울이면
비릿한 네가 내 안에서 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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