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림시인

* < 지하철 묘지 >

환상의 빛 2022. 1. 15. 12:24

서울에 오신지 십 년이 넘도록 어머니는
지하철을 타지 않았다. 어쩌다 길이
늦어 내가 권할라치면 무슨 큰일인 것처럼
두 손을 내저으며 마다하시곤 했다.
처음엔 의아해서 왜냐고 여쭈어도 통
이렇다 할 말씀조차 없으셨다.
그러다 얼마 전
무너진 건물 더미에서 구출되는 사람들을
텔레비전으로 지켜 보던 어머니는 짐짓
저런 땅속에서 어찌 무서워 살았냐며
혼잣말을 하시며 혀를 내두르셨다.
잠자코 옆에서 밥상을 받고 앉았던 나는
어머니의 자하철 기피증을 알 것도 같아
슬그머니 속요량으로 헤아려 보았었다.
아버지의 병사 이후 구체화된 죽음 앞에서
어두움이 주는 깊이는 곧 현실과의
괴리감이었을 것이고 그 단절된 시간들은
죽음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리라.
흡사 지하철 차창 밖의 완벽한 어둠과도 같은
사후의 세계를 어머니는 홀로 두려워하고
계셨던 것이다. 생각이 예까지 미치자
마치 어머니가 세상 저 편에 앉아 계신 것 같아
애처롭고 낯선 모습에 견딜 수가 없었다.
마지막 수저질을 젯밥을 먹듯 힘겹게 하곤
나는 어릴 적에 하던 버릇대로 무릎 걸음으로
어머니의 등뒤로 가 등짝에 코를 묻고 한쪽
손을 뻗어 어머니의 가슴을 그립도록 어루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