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림시인

* < 땅 속의 방 >

환상의 빛 2022. 1. 14. 13:13

통로 입구에서 사내는 잠시 숨을 고른다 가파른 철제
계단은 오르기에도 숨이 찼지만 내려 갈 땐 허리를
뒤로 젖혀야만 했다 꿉꿉한 벽냄새가 번번이 낯선 취기
처럼 사내를 어지럽혔고 그건 장판 밑이거나 신발장
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충혈된 것은 눈빛만이 아니어서
사내는 이내 마른기침으로 불편한 심사를 떨구고 짚고
선 난간에 가느다랗게 힘을 준다 일순 창백한 정맥이
곱게 드러난다 한 치의 틈도 없이 저를 가둔 방
아내는 어둠 속에서 종일 누워만 있었으리라 한 쪽
발을 아래로 내려놓다 말고 사내는 그것이 제 발짝
소리임에도 흠칫 놀라워한다 불을 켜얄 텐데 낮은
목소리에 균열이 인다 균열 마디마디 푸르고 혹 붉은
곰팡내가 섞여 있다 개수대에서 풍기는 악취와 한 번도
햇볕 나들이를 못한 가구와 책상 밑에 숨어 있을 아내의
부윰한 눈빛과도 같이 스멀거리며 기어다닐 벌레들의
안식처로 사내는 세계의 중심부로 내려가듯 텅 텅 땅
속을 울린다 기어이 그 곳에 다다르고 말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