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준 < 그해 봄에 >

환상의 빛 2022. 11. 21. 09:28

얼마 전 손목을 깊게 그은 
당신과 마주 앉아 통닭을 먹는다 

당신이 입가를 닦을 때마다 
소매 사이로 검고 붉은 테가 내비친다 

당신 집에는 
물 대신 술이 있고 
봄 대신 밤이 있고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 대신 내가 있다 

한참이나 말이 없던 내가 
처음 던진 질문은 
왜 봄에 죽으려 했느냐는 것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당신이 
내게 고개를 돌려 
그럼 겨울에 죽을 것이냐며 웃었다 

마음만으로는 될 수도 없고 
꼭 내 마음 같지도 않은 일들이 
봄에는 널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