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희 < 파란만장 하니? >

환상의 빛 2022. 10. 22. 18:20

티 하나 없는 얼굴은
너무 심심해
백옥 같은 얼굴은
유리창처럼 미끄러지지
 
거칠거칠 표면이 좀 투박해야
잘 붙는 마음이 있어
상처 하나 보여주면서
정이 드는 친구가 있어
 
어떻게 평생을 살면서
상처 하나 안 만들 수 있니?
상처를 비켜간 사람은
온실 속 화초 같은 사람
 
친구가 팔 걷어붙이고
핏줄 세워
피 터지게 싸울 때에도
저만치 불구경을 하고 있었을 걸
 
햇볕에 얼굴 탈까봐
팔다리에 흉터 질까봐
전전긍긍하는 사람이 어떻게
뜨겁게 살 수 있겠니?
 
사연이 있는 얼굴이 좋아
비바람이 할퀴고 간 자국
주름살을 펴면 두루마리 사연이
좌르륵 펼쳐지는 사람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