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학 < 늘 그래요 >

환상의 빛 2022. 10. 22. 18:09

 저녁 굶고 술 마셔요 늘 그래요 TV는 계속 짖어대요 혼자 두어도 잘 놀
아요 가끔은 알 수 없는 웃음소리가 흘러요 보지 않아도 TV를 끄지 않아요
그때의 정적이 싫거든요 시월이 오면 손에서 땀이 흘러요 종이가 찢어져
편지조차 쓸 수 없어요 늘 그래요 그녀는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있어요 생
각해 보니 연락이 안 온 지 꽤 되었어요 그냥 무덤덤해요
 내일은 영화나 한 편 보려고 해요 늘 그래요 웃다가 내가 왜 웃었는지
까먹어요 뭔가 재미있는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한참을 생각하다 그냥
덮어두기로 했어요 늘 그래요 집에 들어와 보니 피아노가 부서져 있었어요
피아노 속에는 묵은 기침이 가득하고 책에서 쏟아져 나온 글자들이 바닥에
서 꿈틀대고 있어요 눈썹에서 물감이 묻어 나와요 나는 허공에 검은 물감
을 풀어 넣어요 늘 그래요 회색 물방울들이 날아다니며 기타 줄을 건드려
요 꿈은 언제나 명확해요 사람들은 왜 자신이 하나의 꿈이라는 걸 믿지 않
을까요 가방에서 잉크가 새고 있어요 옷이 더럽혀졌어요 사람들이 모래처
럼 휘날려요 늘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