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정희 < 입술을 가진 이래 >

환상의 빛 2022. 10. 10. 17:39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면 
해가 질 때였을 것이다 
숨죽여 홀로 운 것도 그때였을 것이다 

해가 다시 떠오르지 않을지라도 몰라 
해가 다시 떠오르지 않으면 
당신을 못 볼지도 몰라 
입술을 열어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면......

한 존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을 
꽃 속에 박힌 까아만 죽음을 
비로서 알며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나의 심장이 지금 뛰는 것을 
당신께 고백한 적이 있다면......

내가 입술을 가진 이래 
절박하게 허공을 두드리며 
사랑을 말한 적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해가 질 때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