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안나 < 엉덩이로 쓰는 시 >

환상의 빛 2021. 12. 27. 12:32
어느 시인이 말했었다
시는 엉덩이로 쓰는 것이라고
머리도 손가락도 아니라
책상 앞에 눌어붙어서
엉덩이 힘으로 쓰는 것이라고
 
오랜만에 들린
시골 친구 집 마당 한 귀퉁이
늙은 호박이 땅에 엉덩이를 대고
퍼런 잎사귀와 줄기로
여름을 기어와
누렇게 금 딱지 처럼 제 몸을 익히는
엉덩이 힘으로 쓰는
한여름 펄펄 끓는 뜨거운 경전의 독경소리
 
엉덩이로 쓰는 시는 단단하다
친구가 호박죽 끓여 먹으라고
껍질을 벗겨주는 늙은 호박엔
칼도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