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 이상희 < 봉함엽서 >
환상의 빛
2022. 10. 7. 09:41
세상에 나와 이로운 못 하나 박은 것 없다. 못 하나만
잘 박아도 집이 반듯하게 일어나고 하다못해 외투를 걸어
두는 단정한 자리가 되는 것을, 나는 간통을 하다가 생을
다 보냈다. 시를 훔치려고 소설을 훔치려고 외람된 기호를
가장했다. 아, 나는 남의 것을, 모든 남의 몫뿐이었던 세
상을 살다 간다. 가난한 눈물로 물 그림을 그리던 책상은
긍지처럼 오래 썩어 가게 해 달라. 단 하나, 내 것이었던
두통이여, 이리로 와서 심장이 터지는 소리를 막아 다오.
그리고 떳떳한 사랑을 하던 부럽던 사람들 곁을 떠나는 출
발을 지켜봐 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