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림시인

* < 안서동에 묻다 > - 1989 3월

환상의 빛 2021. 12. 23. 18:23

포장 밖으로 길들이 흘러갔다
추억이 시간을 맞으러 흘러갔다
예정된것이 하나도 없는 저녁
구태 의연한 일상들 파지로
구겨지거나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든 차량처럼 후진해 나갔다
불가사의한 어둠들은 이 시각
골목이나 공원에서 불안한 자세로
기웃거리고 있을 것이었다
도무지 짐작하기도 힘들 만큼
생애의 어느 한 부분은 공기의
유리컵 속에 한 방울의 우유로
용해되는 담배 연기처럼 상당수
흐려져 있거나 침을 묻혀 가며 꼭
꼭 집어도 낱낱이 갈라져 뭉쳐지지
않는 머리카락처럼 뭉텅 빠져 있었다
이 시간 또한 예정된 것은 아니었다
어둠들은 이제 소유한 만큼씩의
불빛을 단단하게 발하고 있다
나는 흘러가지 않는다
한 정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