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 이성미 < 밤의 서랍 >
환상의 빛
2022. 9. 20. 07:50
기차 창밖으로 밤의 나무들이 지나간다. 밤과
밤 속의 낮이 지나간다.
밤 속의 낮 속의 밤에
밤의 서랍이 스르륵 열립니다.
서랍 속에는
너 말고
다른 사람.
깨진 장난감 조각처럼
주워 모은 말들. 부서진 말들.
서랍 속에 있는
책을 펼치면
책장에 끼워둔 은행잎처럼 너는 우수수 떨어진다.
악보에서 떨어지는 음표들처럼.
이제 너는 너 말고
다른 사람.
허리를 구부려 나는 줍는다.
너의 까만 발톱. 구부러진 발톱.
나는 장난감과 음표들과 발톱으로 이루어진
노래를 띄엄띄엄 부른다.
책을 넣고, 서랍 속에
너 말고 다른 사람.
너는 넓은 밤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혼자 튀어나와 있던 서랍이
책장 속으로 쑥 들어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