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주 시집 <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

환상의 빛 2022. 9. 6. 07:04

헌책방에서 우연히 첫 시집을 발견한 적이 있다. 
가격표 아래 2천 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누가 볼까 봐 가방에 넣었다. 
그날 나는 자신의 시집을 훔친 시인이 되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시집을 훔쳐본 경험은 
시를 쓰는 동안 
머쓱한 궁리를 물리치는 힘이 되고 있다.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그사이 첫 시집은 절판되었고 
더 이상 어디에서도 첫 시집을 구할 수 없었다. 
내가 몰래 훔쳐온 그 시집 한 권만이 남아 있었다. 
복간이 된 첫 시집을 받아보며 
나는 이 시집을 또 어디선가 훔칠 것인가 상상해본다. 
그대가 제때 버려주었으니 
내가 지금껏 구석을 모른다고는 할 수 없으나 
슬하에 구석이 이만큼 다정도 하다
데리러 갈게 ...... 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 김경주 시집 <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 시인의 말 / 2012년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