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림시인
* < 예하리에서 >
환상의 빛
2022. 8. 13. 07:57
오래 눈내리는 들을 지나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을로 기적이 홀로 울다 슬피
불려가는 밤, 쉰아홉 아버지의 비망록을
챙겨들고 맨드라미 꽃순처럼 붉게
붉게 편도선을 앓았다.
언제나 희망이 유급당하는
그러나 사랑하는 나의 땅에서
수산회사 이십오면 근속상을 받으셨던
아버지의 영전에 삼십만원 퇴직금이
이땅의 서슬푸른 노동法으로 놓여지고
무엇일까
철둑길 건너 깊은 어둠 속으로 침륜하는 눈물의 평등과
밑둥 잘린 볏단으로 한꺼번에 쓰러지는
우리들의 자유는,
공복의 희미한 어둠으로 지워져
이마에 못질 해대던 세상이 참담하게
밝아오는 새벽, 기름때 자욱히 낀 손톱밑
굳은 살로 박히우던 아버지의 절망들이
예하리 깊은 안개 속으로 서서히
물결쳐 흘러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