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림시인

* < 장미꽃 밟지 않으려 >

환상의 빛 2022. 4. 22. 10:47

 내게,

 전화를 하고 돌아오는 길은 멀었다.
 찬 손 동전 몇 닢을 꼭 쥐고
 네 그리운 목소리를 호출하며 나는 마음으로 
 옅은 강江줄기가 흐르는 듯하여

 

 잠시 하늘을 올려다 보기도 했다.
 가까이... 아주 가까이에 있어도

 

 마냥 그립기만 한 네가 다시 그리워, 
 나는 짐짓 껄렁한 척 휘파람을 불며 걷기도
 했다만 어느......사이
 그 휘파람의 음색은 네가 좋아하는 노래를
 닮았더라.
 골목길 어지러이 떨어진 장미꽃잎들,
 그 고운 이파리를 밟지 않으려
 조심스레 걸으며 어쩌면, 그래 어쩌면
 누군가를 사랑하는 맘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혼자만의 생각에 턱없이 웃고 말았지. 
 어둠을 배경으로 서 있던 십자가,
 십자가 나를 허공중에 매달고 나는
 그 빛처럼 붉은 신열을 토하는 사랑을 하리라
 맹세 같은 가슴다짐도 하고는 했었다. 
 
 [자물쇠 같은 공중전화로 당신의 음성을 훔쳐보던 저녁
 나는 길가 가로등 밑에 점점이 뿌려진 붉은 장미꽃잎
을 밟지 않으려
 한쪽 발로 이리 저리 깨금발로 뛰었습니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그렇게 하는 마음이 내 사랑을 지켜줄 영원의 징표라도
 되는 것처럼...]
 
 
 취하지 않고서는,
 아니 취하지 않으면 잠들 수 없는 사람처럼
 나는 이리 앉아 한잔의 맑은 술을 마신다. 
 돌이켜 헤아리기도 너무 벅찬 나날들,
 그 나날들 속에서 정신없이 나를 이끌고
 다니던 미친 말과도 같았던 하나의 이유,
 그건 바로 너와 함께 살 수 없다는 비애였다.
 헤아려 보자면 너 역시 나와 같은 아픔에
 마음이 빈들 같았으리라만
 사람의 이기심이란 또 얼마나 자기 중심적이며
 배타적인 감정의 극치란 말인지...,
 이제 와서, 
 무엇을 아니 그 어떤 상황을 원망하겠냐만
 단 하나! 네게 해줄 말은 있다. 
 '너로 인해 내가 견뎌!'
 네가 있어서 나도 있는거야!
 다른 하늘이라도 우린 살아 있으니까...!
 
 네 편에서 나를 바라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