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림시인

* < 돌담에서 바라본 서울의 야경 >

환상의 빛 2022. 4. 22. 10:45

 며칠을 가슴에 몇 개의 돌을 얹은 듯이 답답하기만 했다.
 하는 일마다 꼬투리가 잡히고 전화나 사람들마저도
나를 짜증나게 할 뿐.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마음에 드는 일이라곤 없었다.


 실핏줄처럼 섬세하게 번져간 형광불빛들과 그때까지
늦은 도시를 달려와
 강을 건너는 차들의 헤드라이트 흐린 촉수를 드리우
는 몇 안 되는
 서울의 별빛 아래로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네온 사인들,
 나는 여지껏 그렇게 아름다운 서울의 야경을 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자정을 넘긴 밤에 산에 앉아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과
 어둠을 속여 몇 잔의 밀주를 나눠 마시며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 있고
 조금씩 자신의 내면을 부끄럽지 않게 내비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내 마음을 뿌듯하게 했다.
 밤의 숲은 설핏 부는 바람에도 무수한 어둠의 정령들을
쏟아내고
 그 정령들은 우리들의 노랫소리에 홀리듯 다가와 때
로 춤을 추기도 했다.
 어둠이 주는 안온함과 숲의 평화로움 속에서 낮동안
의 번잡함과
 분주한 일상들은 과거형되어 마침표를 찍고 갔었다.

* 여림 < 돌담에서 바라본 서울의 야경 >